,

ltm0.egloos.com

포토로그




그들이 언제 주된 것을 제대로 소유한 적 있던가? 뭐가 그들이 이미 얻었거나 얻을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이지?


 설사 있는 것 같더라도 그저 덧없는 허상에 불과 할 것이다..

난 그들의 비겁하거나 치졸한 마구잡이 식 ‘안정장치수단’을 인정해줄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어디까지가 최대한인지……정도를 넘으면 안 되는 이유가 정말 원하지 않아서 안 넘으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조금이라도 끌리기에 가능하면 나쁠 것 같지도 않지만  자칫하면 더 좋은 걸 잃을 까봐 못 넘는 것인지.. 혹은 주제를 모르고 이것 저것 다 포섭해도 알맹이는 잃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나가는 건지..

첫번째 이유를 제외한 두번째 세번째 이유를 두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정장치수단이라고 하는 거다. 개중에 두 번째는 뭐가 마구잡이식이라는 건데? 라고 따질지 모르겠는데 답변하자면, 그건 자신의 옹색한 최선을 위해 상대(타인)의 최선의 가능성과 존엄성을 은연 중 젊잖은 척 짓밟는 것이며 상대를 위하는 척하며 자신의 제물로 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왜 상대가 얼마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이탈한 여지가 있는 줏대없고 비열한 자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 또는 안정장치가 되어 주어야 하는 거지? 그들은 왜 그런 걸 주제넘어도 한참 주제넘게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려 하는 거지?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기본'으로 너무 과분한 걸 설정하는 셈이다.

그럼 두번째와 세번째의 이유를 가진 자들을 위한 답은 뭘까?
그건 이것 저것 줏대 없는 욕망을 가진 자는 알맹이를 제외한 거품만을 얻는다는 걸 더욱 확실히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알맹이를 대표적이고 주된 것으로 두더라도 알맹이의 정체성을 흐리는 거품을 플러스 요인으로 삼는 것은 핵심에 대한 모독이자 남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주제넘게 기본으로 삼은 알맹이는 그들의 자격미달로 인해 무효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있어서 ‘더(부수적)’ 것을 원한다는 자체부터가 주된 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방증이거든. 그들이 별개인 것처럼 말하는 부수적인 것은 실은 그들이 이미 가졌거나 가질 수 있는 거라 여기는 주된 것과 대놓고는 아니라도 은근히 일치하며 그들의 본질적 수준을 관통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이미 시작한 거품은 결코 겸손 한 척하지 않는다.. (이미 거품과 시작했기에 알맹이를 가질 수 없단 사실을 간과한 채 심지어 거품이 알맹이로 둔갑된다) 뭔가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하위호환을 가장한 상위호환 혹은 상위호환을 가장한 하위호환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거든. 근데.. 막상 부수적인 것을 포섭하려니 되레 주된 것이 알맹이였다는 사실자체가 취소.. 아니 정확히 말해서 무효 되어 버리는 것이지.. 그러고선 거품 같은 인격이 그들의 주된 것이었음이 역 증명되거나 아니면 인격이 없는 존재가 그들의 주된 것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설사 알맹이에 거품이 끼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가정은 모든 상호관계가 배제된 전제에서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이 또는 다른 이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경쟁의 이면


통찰력을 가지고 보면, 경쟁이라는 것은 꼭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자에 의해서만 긍정되는 것이 아니고,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자에 의해서만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확실히 이길 자격이 있다면 절대적인 승리를 원하지 어정쩡한 상대적인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아무리 자신이 비교우위에 서있지만 상대와 허울만 다를 뿐 근본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건 승리자인 자신에게 자랑보다는 은근한 모독과 침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알게 모르게 잃는 게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본질적으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자가 경쟁을 부추기고 조장하거나 경쟁구도를 유도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은 자신들이 질 게 뻔한 경쟁을 자살구도로 스스로 몰아가는 불나방들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종적으로 1승9패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상대에 의해 ‘어차피 100%질 게 뻔한 상대도 안 되는 경쟁조차 무의미한 경쟁상대’라고 규정되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패자부활전에 자신 있는 자들은 1승 9패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떨어질 수 있겠지만 패자부활전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가상의 경쟁구도를 현실세계에 끌어와 합리화 시키는 것도 모자라 1승을 부풀려 2승, 3승, 5승 심하면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9승, 10승으로 둔갑시켜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것 마냥 상대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을 물과 기름 섞듯 교묘하게 뒤바꿔 놓기도 한다.

완전한 객관성이란 존재할까?


세상의 모든 객관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그 주관성이 자신의 주관성이 아닌 타인의 주관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뿐

물론 주관성은 사람마다 상대적 차이가 있기에 사회적으로 모든 주관성이 객관성으로 순화되는것은 아니지만, 자기입장이 포함했든 아니든 주관성이 비교적 포괄적이고 보편성을 띌 때 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관성에 은연중 다수결의 법칙을 결부시켜서 성립된 개념을 객관성이라 한다면 아무리 보편적이고 광범위 하다해도 상대적인 주관성을 토대로 한것이기에 백퍼센트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절대적이라면 한치의 예외나 모순도 없어야 하는데 그저 다수의 주관성이 모여 성립된 개념일
뿐 소수의 개인적인 주관성은 타인에 의해 객관성으로 승화되기는 커녕 묵살되거나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성은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고 객관성은 절대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널려있다

모 포털사이트의 사전을 찾아보면 객관적이라는 뜻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세계나 자연따위가 주관의 작용과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나왔는데 거기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 제삼자가 소수이든 다수이든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난 타인의 관점이라면 무조건 객관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두고 객관적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타인의 입장이 소수의 입장이라면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뿐이라며 터부시하면서 아무리 자기입장이 동반된 관점이나 은연중 포함한 관념이라도 대다수의 타인이 인정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자신의 시각과 생각이 담긴 주장이라도 객관성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쉽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옮겨오거나 타인의 생각이나 입장을 대변한다는 해석이나 주장들도 본인이 거기에 반론을 덧붙이든 동조하든 의식중에 혹은 무의식에라도 타자를 인용하거나 대변하고 있다는 사람 본인의 시각과 생각도 은연중 담겨져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적은 나?


 어떤 유리한 요소를 개인보다 집단에 적용하거나 이용하고선 언젠가 그 유리한 요소에 금이 갈 때 전혀 동정심이나 측은함조차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파충류든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자신을 위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 이끌리기 마련임에도 ‘나의 적은 나 자신’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방증인데, 그러니까 마치 나 자신을 내가 속한 집단이나 다른 누군가에 투영하고서 나 자신이라는 적을 물리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집단이 취하는 이득과 손실에서 완전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재고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단점이 아닌 걸 단점이라고 지적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인 기준에서 단점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한계를 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도를 넘는 오지랖이나 구태여 엮이려 들면서 되레 지적하는 본인의 얼굴에 알게 모르게 먹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알아서 떨어지면 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치졸한 누군가는 불확실한 약점과 명백한 약점을 교란시켜서 ‘불분명한 약점이 실은 약점이 아니었다’로 증명 못해줄 할 망정, 불확실한 약점조차 은연중에 명백한 약점으로 둔갑시켜서 ‘그래 그 정도 문제는 좋진 않아도 공감하거나 이해한다’는 식으로 은.근.히. 깎아 내리거나 혹은 ‘덮어준다’는 식으로 주제 넘는 선심 쓰는 척하거나…… 상향평준화를 위해 따라 올라가고는 싶은 데 많은 걸 감수하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기어올라가다가 위에 있는 사람 발목 붙들고 같이 떨어지려 하는 것이다..

일례로 ‘너의 적은 너, 나의 적은 나’라고 하지 않고 애매하게 ‘원래 여자의 적은 여자’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남자들의 경쟁력(경쟁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잠재된 능력)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고사하고 그 남자들은 그 자신에게 주어질 지도 모르는 막강한(꼭 육체적 힘이나 자신이 종사하는 직종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자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질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거기서 회피하기 위해 책임을 애먼 여자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의미도 없는데 마치 자신 또는 그 자신 같은 사람을 사이에 두고 여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듯한.. 어이없는 착시현상..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경쟁구도에서 여자들끼리 분열이 일어나면 거기서 여자들이 자신이 닮고 싶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의 기준에서 열등하게 떨어져 나오는 여자는 쉽게 자신에게 콩고물처럼 떨어질 거라는 착각이랄까..

그들이 여자들끼리 경쟁구도를 조작하는 것을 은근히 즐길 때 상대적 우위에 설정하는 50퍼센트 여자들의 특징은 알게 모르게 그 남자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거품의 어정쩡한 특성과 은근히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들이 ‘은연중’자신들에게 콩고물처럼 떨어지는 현실성(?)있다는 심각한 착각의 여자는 전체적이 아니라도 부분적으로 부분적으로 열등하다는 설정에 두었다는 점이다. (깎아 내리는 동시에 같잖은 선심 쓰는 듯한 생색내는 일석이조?)

그냥 깔끔하고 자신의 이른 선택이 적어도 그 자신에겐 최고임을 증명하듯 책임감있게 올오어낫씽으로 그것이 거품이라도 전반적으로 그들이 우월하다는 설정에 두었던 여자나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처럼 하지 그랬나? 아무리 착각이라도 전자에 비하면 확실히 생산적이고 (그들은 이상을 가장했지만) 더 현실적이다. 그들이 이미 알 수도 있겠지만 더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들이 진짜 여자들과 경쟁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즉, 할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자존감이 있고 각자에 개성을 존중했더라면 주제넘게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을 테니까.

1